1. 루이14세.
우리가 태양왕하면 루이 14세가 바로 떠오르죠. 한국에서는 프랑스와 밀접하지 않는 나라에서도 대명사처럼 되어있을 정도로 루이 14세는 세계에서 가장 이미지 메이킹이 잘 된 왕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프랑스하면 베르사유, 베르사유하면 루이 14세가 떠오를 정도로 잘 알려진 왕이다 보니 루이14세에 대한 영화, 드라마, 뮤지컬이 많아요.
어찌나 유명한지 양주이름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문화가 화려했다면 반대로 신음하고 힘들어 하는 사람들은 더 끔찍했을 겁니다.
그런 어두운 그림자만 모아 가지고 만든 드라마가 넷플릭스에서 보실수 있는 “베르사유”하는 드라마입니다.
루이 14세가 한 말 중에 가장 유명한 말. “짐이 곧 국가다”라는 말이죠.
얼마나 독재자스러운 말입니까?
사실 루이 14세는 ‘프랑스를 한 나라로 통합해야 되고 그 통합된 프랑스에는 자기만이 있어야 된다’라는 어떤 권력에 대한 집착이 광기의 수준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그 광기를 잘 표현한것이 “베르사유” 궁전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2. 루이14세 집권 배경.
루이 14세가 왜 이렇게 권력에 대한 집착이 강해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이14세가 왕이 되기 직전에 프랑스가 어떤사항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루이 14세 집권하기 전에 프랑스의 2개 큰 내전이 있었어요. 첫 번째 내전은 종교전쟁. 30년이상 프랑스 전체를 피바다로 만들어 놓습니다.
이 종교전쟁으로 인해 프랑스 개신교 들이 수호자 또는 리더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한 역사가의 추측에 의하면 ‘1560년 때쯤 되면 프랑스의 총개신교도의 숫자는 200만 명 이었고 1500개 정도의 개신교 교회가 활동을 하고 있었고 귀족들 중에서 반정도가 개신교 되었다’라고 얘기를합니다.
앙리 2세가 죽고 나서 프랑수아 2세라는 어린 왕이 왕자의 앉게 되니까, 처갓집이던 ‘기즈’집안이 세도 정치의 시작.
‘기즈’ 집안의 세도 정치에 불만을 가졌던 귀족들의 의해서 ‘프랑스와 2세’를 납치하려고 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런 사건들로 내전은 30년 이상 휩싸이게 되는 거죠.
싸움은 결국 어떻게 보면 ‘부르봉가문의 앙리4세’ 가문의 승리로 끝나죠 부르봉 가문 출신인 앙리 4세가 왕위에 함께 됩니다.
3. 베르사유 드라마의 갈등과 배경
프랑스가 명목적으로 가톨릭 국가이지만, 앙리 4세가 왕위에 안되면 가톨릭으로 개종을 해야 된다. 앙리 4세는 전에 자기가 개신교되었기 때문에 가톨릭 왕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자유를 모든 사람에게 주는 낭트칙령이라는 왕명을 발표합니다.
이로서 일시적으로 전쟁은 마무리. 루이 14세는 아마 내전의 역사를 기억을 하면서 종교가 다양한 것이 나쁜 거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평생동안 프랑스를 가톨릭이라는 하나의 종교로 통합 지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합니다.
부르봉가문이 원래 출신은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의 리드였죠. 그만큼 프랑스의 프로테스탄트는 루이14세에 대해서 더 강한 배신감을느끼고 그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프로테스탄트들과 루이 14세에 감정적인 충돌이 베르사유의 가장 중요한 드라마적 요소입니다.